PROJECT LOG05
관제실을 짓다
다섯 번째 현장은 파사드가 아니라 관제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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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WE REMEMBER THIS
THE CONTROL ROOM
우리는 여기서 배웠습니다
새 도메인을 공부하는 일은 배우가 배역을 연구하는 일과 닮았다는 것, 그리고 디지털 전환의 절반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안착시키는 일이라는 것을흩어진 매체 데이터, 남겨야 할 보고의 형식, 그리고 새 시스템 위에 사람을 안착시키는 방법에 관한 기록입니다.
01 THE DOOR WE KNOCKED
홈페이지를 팔러 갔다가, 시스템을 짓게 됐습니다
홈페이지 제작을 하다 보면 고객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광고 대행도 하시나요?” 사이트를 만들었으니 사람을 데려오는 일까지 함께 물어보시는 겁니다.
그 질문을 여러 번 받고 나서 문득 방향을 뒤집어 봤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든 고객이 광고를 찾는다면, 광고를 대행하는 회사에는 홈페이지 수요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광고대행사들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영업을 나갔습니다.
그렇게 만난 곳이 이프로애드였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맡게 된 것은 홈페이지가 아니라, 여러 광고 매체의 데이터를 하나로 통합하는 시스템 개발이었습니다. 팔러 간 물건과 팔린 물건이 달랐던 셈입니다.
지난 현장에서 법무사님을 통해 변호사님을 만났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영업은 계획한 문이 열리는 일이 아니라,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만 아무 문이든 열리는 일이라는 것. 두 번 겪고 나니 이제는 우연이 아니라 원리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WE WENT TO SELL
웹사이트WE CAME TO BUILD
광고 데이터 통합 시스템
02 A DAY OF THE AGENCY
대행사의 하루는 로그인으로 시작됩니다
광고대행 업계의 리포팅 업무는 대체로 이런 흐름을 갖습니다. 매체마다 따로 마련된 관리 화면에 각각 접속해 데이터를 내려받고, 그렇게 모인 자료를 하나의 문서로 정리해 광고주별 리포트를 만듭니다. 도구가 아무리 좋아져도 매체의 수와 광고주의 수가 곱해지는 구조라, 이 작업은 정직하게 배로 늘어납니다.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이 업계가 공유하는 조건에 가깝습니다. 광고 매체는 저마다 다른 회사의 서비스이고, 각자의 화면과 각자의 지표 체계를 갖고 있으니까요. 흩어져 있는 것이 기본값인 셈입니다.
우리가 지을 것은 그 흩어짐을 한곳으로 모으는 시스템이었습니다. 각 매체의 API로 데이터를 자동 수집하고, 광고주 리포트가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구조. 여러 개의 창을 하나의 화면으로 모으는 일이었으니, 이번에 지은 것은 파사드가 아니라 관제실에 가까웠습니다.
SYSTEM MAP
- MEDIA 01
- MEDIA 02
- MEDIA 03
- MEDIA 04
ONE SCREEN
흩어진 창을 하나의 관제 화면으로03 STUDYING THE ROLE
배우가 배역을 연구하듯이
광고 운영이라는 도메인은 우리에게 처음이었습니다. 매체마다 지표의 이름이 다르고, 같은 이름을 써도 집계 기준이 다릅니다. 대행사 실무자가 매달 무엇을 확인하고 무엇을 광고주에게 설명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했습니다.
기간과 기간을 견주어 흐름을 보는 방식, 서로 다른 축을 교차해 비용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식, 그리고 광고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를 확인하는 방식까지 — 결국 리포트의 형태를 이해하려면 그 리포트를 매달 만드는 사람의 머릿속을 이해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가 참 즐거웠습니다. 하다 보니 어딘가 닮은 일이 떠올랐습니다. 배우가 새 작품을 만나 인물을 연구하는 일 말입니다. 그 인물이 어떤 하루를 사는지,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바라는지 파고들다가, 결국 그것을 연기라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승화시키는 과정.
우리의 일도 그렇습니다. 새 도메인을 만나 실무자의 하루를 연구하고, 그 이해를 시스템이라는 눈에 보이는 제품으로 승화시키는 것. 앞선 현장들에서 게시판에도, 강사의 달력에도, 냉동 설비 카탈로그에도 도메인이 있다는 걸 배워 왔지만, 그 공부가 의무가 아니라 이 일의 즐거움이라는 걸 또렷하게 느낀 건 이번 현장이었습니다.
01
지표의 언어02
실무자의 하루03
보고의 맥락04
행동의 전환
04 THE FIRST BLUEPRINT
우리가 처음 그렸던 그림: 리포트 없는 리포팅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많이 고민한 대목입니다.
시스템이 문서 형태의 리포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일까. 우리가 찾은 답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것. 둘, 광고주가 직접 들어와 능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 문서는 만드는 사람이 정한 시점의 숫자를 정해진 형태로 건네주는 구조입니다. 시스템은 보고 싶은 사람이 보고 싶을 때 직접 들여다보는 구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 그린 그림은 과감했습니다. 리포트라는 보고 체계 자체를 덜어 내는 것. 광고주마다 궁금해하는 지표가 다르니, 정해진 리포트 양식을 여러 벌 만드는 대신 대시보드를 커스터마이징해 각자의 니즈를 맞추자는 구상이었습니다. 실무자도 같은 화면 위에서 일하고 광고주도 같은 화면을 본다면, 매달 리포트를 만들어 보내는 행위 자체가 필요 없어질 수 있다고 봤습니다.
수작업을 기계로 옮기는 것이 자동화라면, 일하는 방식과 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는 것이 디지털 전환일 텐데 — 이왕 시스템을 짓는다면 후자에 닿고 싶었습니다.
REAL TIME
지금의 숫자를 봅니다DIRECT ACCESS
광고주가 직접 확인합니다CUSTOM VIEW
필요한 지표를 고릅니다SHARED SCREEN
같은 화면 위에서 일합니다
05 WHAT THE FIELD KEPT
논의 끝에, 리포트는 남았습니다
현장의 답은 달랐습니다. 리포트와 보고라는 형식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고객의 자리에서 다시 보니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었습니다. 대행사에게 리포트는 숫자를 전달하는 문서만이 아니라, 한 달의 일을 정리해 광고주 앞에 내놓는 보고의 형식입니다. 화면을 열어 두는 것과 정리된 보고를 건네는 것은 받는 쪽의 경험부터 다릅니다. 그리고 모두가 대시보드에 들어와 능동적으로 숫자를 들여다보리라는 전제 자체가, 어쩌면 만드는 사람의 낙관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리포트를 덜어 내는 대신, 리포트 안에 데이터가 동적으로 채워지도록 하는 쪽으로. 형식은 익숙한 채로 두고 그 안을 살아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방식입니다. 한번 만들어 둔 표 템플릿에 조회 주기에 맞춰 숫자가 자동으로 들어차게 하는 구조라면, 보고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옮겨 담는 반복은 사라집니다.
외주 개발은 결국 고객이 요청하는 바를 전문가의 관점에서 대신 행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더 낫다고 믿는 방향은 근거를 들어 제안하되, 결정된 요청은 요청대로 완성도 있게 지어 냅니다. 첫 현장에서 얻었던 원칙 — 강요하지 않되 침묵하지도 않는 것 — 이 다른 얼굴로 다시 찾아온 셈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경계하게 됐습니다. 기존의 방식이 정말 낡은 것이었을까. 사람이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는 숫자를 눈으로 훑으며 이상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고, 광고주마다 다른 맥락을 손끝으로 반영하는 판단이 있습니다. 리포트라는 형식 안에도 시스템이 아직 모르는 전문성이 섞여 있는 겁니다. DX와 AX를 이야기할 때 바꾸려는 대상을 먼저 존중하지 않으면 전환이 아니라 손실이 됩니다. 새것을 짓는 사람일수록 이 경계를 잊지 않으려 합니다.
FIRST BLUEPRINT
리포트를 덜어 내기대시보드가 보고 체계를 대신하는 그림
FIELD DECISION
리포트 안을 동적으로 바꾸기익숙한 형식은 남기고 반복을 없애는 그림
06 HALF OF TRANSFORMATION
전환의 절반은 온보딩입니다
이번 현장에서 얻은 가장 실무적인 배움은 이것입니다. DX·AX 프로젝트에서 기능을 만드는 일과, 사람을 그 기능 위에 안착시키는 일은 거의 같은 크기의 일이라는 것.
시스템이 아무리 잘 작동해도 사용하는 사람이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면 전환은 일어나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새 시스템은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건너가는 다리까지 함께 설계되어야 합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덜어 내려고 했던 리포트야말로 그 다리였습니다. 전환은 익숙한 형식을 없애는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익숙한 형식을 타고 건너가는 데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
건물로 치면 관제실을 잘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그 방에 모여 앉게 되어야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07 THREE THINGS WE KEPT
다섯 번째 프로젝트가 남긴 세 가지
01 / DIRECTION
방향수요는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습니다 고객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의 방향을 뒤집어 본 것이 이번 인연이 됐습니다
02 / JOY
즐거움새 도메인 공부는 프로젝트를 위해 치르는 비용이 아니라 이 일의 즐거움입니다
03 / TRANSFORMATION
전환디지털 전환은 화면이 아니라 사람이 일하는 방식을 옮기는 일입니다
앞선 현장들이 기준과 태도와 셈법과 수명을 남겼다면, 다섯 번째 현장은 전환을 남겼습니다. 흩어진 데이터를 모으고 반복 업무를 시스템으로 옮기려는 회사라면, 이 회고의 고민들이 작게나마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